휴머노이드 로봇 10만 개 실적, 분모가 빠져 있습니다

휴머노이드 소식은 대부분 영상입니다. 백플립을 하고, 계란을 집고, 춤을 춥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몇 개를 처리했는지 밝힌 사례는 제가 아는 한 하나뿐입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2025년 11월 20일에 내놓은 '토트 10만 개'. 업계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숫자죠. 그래서 나눠 봤습니다.

업계에서 유일하게 인용되는 숫자

출발은 2024년 6월 27일입니다. 물류기업 GXO가 어질리티 로보틱스와 계약을 발표했습니다. 업계 최초의 상업용 휴머노이드 RaaS 계약, 즉 로봇을 사는 것이 아니라 구독하는 방식이었죠. 현장은 조지아주 플라워리브랜치에 있는 스팽스(SPANX) 물류센터였습니다. Digit이 맡은 일은 딱 하나입니다. 협동로봇이 채워 넣은 토트를 받아 컨베이어에 올리는 것. GXO 발표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반복 작업'이고, 로봇의 작업 지시는 어질리티의 관제 플랫폼 '아크(Arc)'가 내립니다. 사람이 매번 붙어 조작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죠. 그리고 약 1년 5개월 뒤인 2025년 11월 20일, 어질리티가 누적 10만 개 돌파를 발표했습니다. 실험실 시연이 아니라 실제 산업 처리량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요. 휴머노이드 업계에서 이 정도로 구체적인 실적 수치가 공개된 사례는 지금도 드뭅니다.

511일로 나눠 봤습니다

계약 발표일부터 10만 돌파 발표일까지는 정확히 511일입니다. 10만을 511로 나누면 하루 195.7개가 나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나눠야 감이 옵니다. 1교대 8시간으로 가정하면 시간당 24.5개, 2.5분에 하나꼴이죠. 2교대 16시간이면 시간당 12개로 떨어져 5분에 하나가 되고, 24시간 무인 가동이라면 7.4분에 하나입니다. 창고에서 사람이 토트 하나를 집어 컨베이어에 올리는 데 몇 초를 쓰는지 떠올려 보면, 이 간격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이 숫자를 그대로 '느리다'는 결론으로 옮기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10만이라는 숫자를 나눠 보면2024. 6. 27GXO 계약 발표2025. 11. 20토트 10만 개 돌파511일100,000 ÷ 511일 = 하루 195.7개8시간 가동이면2.5분에 1개16시간 가동이면4.9분에 1개24시간 가동이면7.4분에 1개그런데 분모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로봇 대수 ?교대 시간 ?실제 가동 시작일 ?로봇이 두 대라면 대당 하루 98개 — 195.7은 실적이 아니라 천장값입니다자료: GXO 보도자료(2024.6.27) · Agility Robotics 발표(2025.11.20). 511일과 하루 처리량은 두 발표일 사이를 직접 나눈 값입니다.* 계약 발표일부터 셌으므로 실제 가동 기간은 511일보다 짧고, 그만큼 실제 처리 속도는 이 값보다 빠릅니다.Humanoid Now · humanoidnow.kr

문제는 분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계산을 마치고 나서 원문을 다시 뒤졌습니다. 로봇이 몇 대인지 찾을 수가 없더군요. 2024년 GXO 보도자료에도, 2025년 어질리티 발표에도 대수가 없습니다. 교대 시간도, 가동률도, 실제로 첫 토트를 옮긴 날짜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195.7개는 로봇이 딱 한 대일 때 나오는 값입니다. 두 대라면 대당 98개, 세 대라면 65개로 떨어지죠. 195.7은 실적이 아니라 천장값이었던 겁니다. 공정하게 보려면 반대 방향의 함정도 짚어야 합니다. 저는 계약 발표일부터 날짜를 셌는데, 계약과 실가동 사이에는 보통 준비 기간이 있습니다. 실제 가동 기간은 511일보다 짧고, 그만큼 진짜 처리 속도는 제 계산보다 빠릅니다. 두 함정이 서로를 얼마나 상쇄하는지는 분모가 공개돼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숫자가 값진 이유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입니다. 이 글은 Digit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죠. 경쟁사 대부분은 이런 숫자조차 내놓지 못합니다. 누적 실적을 공개했다는 것은 그 로봇이 아직 현장에 남아 있다는 뜻이고, 1년 5개월 동안 계약이 유지됐다는 뜻입니다. 시연용 로봇은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니까요. 구독 방식이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고객은 로봇을 사지 않고 쓴 만큼 냅니다. 그러면 판단 기준이 '사람보다 빠른가'에서 '월 사용료보다 많이 벌어 주는가'로 바뀌죠. 시간당 24개라도 그 비용이 충분히 낮으면 계약은 유지됩니다. Digit이 맡은 일이 공정 전체가 아니라 한 칸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사람 한 명을 통째로 대체하는 경기가 아니라, 사람을 그 자리에서 빼내는 경기입니다. 다만 '휴머노이드 시대가 온다'는 문장과 '2.5분에 토트 하나'는 같은 현실의 두 얼굴이고, 둘 다 봐야 판단이 섭니다. 배치 현황을 정리한 지난 글에서도 발표된 대수와 실제로 확인되는 대수는 늘 달랐습니다.

맺음말

다음에 휴머노이드 실적 발표를 만나면 분자 말고 분모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몇 대가, 며칠 동안, 하루 몇 시간. 이 셋이 없으면 아무리 큰 숫자도 크기만 있고 속도가 없습니다. 업계가 시연 영상에서 누적 실적으로 넘어온 것은 분명한 진전입니다. 다음 진전은 분모를 함께 내놓는 것이겠죠. 그 발표가 나오는 날이, 휴머노이드가 구경거리에서 설비로 넘어가는 날일 겁니다.

참고 자료

  • GXO, "GXO Signs Industry-First Multi-Year Agreement with Agility Robotics" (2024.6.27) — 원문 링크
  • Agility Robotics, "Digit Moves Over 100,000 Totes in Commercial Deployment" (2025.11.20) — 원문 링크
  • DC Velocity, "GXO deploys humanoid robots in Spanx warehouse" (2024.6.28) —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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