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배터리, 얼음을 지고 달린 이유
2025년 4월 19일 베이징 이좡 하프마라톤. 인간 12,000명 사이에 휴머노이드 21대가 섞여 달렸습니다. 그 로봇들 등에는 얼음이 실려 있었고, 정비 요원들이 옆에서 냉각 스프레이를 뿌리며 따라 뛰었습니다. 우승 기록은 2시간 40분 42초.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같은 코스에서 50분 26초가 나왔습니다. 두 시간이 줄어드는 동안 바뀐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었습니다.
2025년에는 얼음을 지고 달렸습니다
우승은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가 만든 톈궁 울트라였습니다. 키 약 180센티미터, 무게 약 55킬로그램. 21.0975킬로미터를 2시간 40분 42초에 완주했습니다. 그 사이 배터리는 세 번 갈았고요. 사람이 하프마라톤 도중에 심장을 세 번 바꿀 수는 없으니, 이 대회에서 배터리 교체는 반칙이 아니라 규칙이었죠. 나머지 로봇들의 사정은 더 나빴습니다. 다수가 과열로 주저앉거나 넘어졌고, 유니트리는 완주를 위해 아예 얼음 배낭을 지웠습니다. 기록만 보면 기술 시연입니다. 그런데 현장 사진을 보면 다른 이야기가 읽히더군요. 로봇의 몸이 스스로 열을 버리지 못해서, 사람이 옆에서 계속 식혀 주고 있었습니다. 사족을 붙이면 이 대회는 인간과 로봇이 같은 코스를 달린 첫 사례였고, 결과는 인간의 완승이었죠. 인간 우승자는 1시간 남짓에 끝냈고요.
토르소 단면을 그려 보니 열이 나갈 길이 없었습니다
왜 얼음까지 필요했는지 납득이 안 돼서, 휴머노이드 상체 단면을 종이에 그려 봤습니다. 가로 35, 세로 45, 깊이 20센티미터쯤 되는 상자. 그 안에 배터리팩을 눕히고, 제어 기판을 세우고, 어깨와 허리 액추에이터를 배치했습니다. 그려 놓고 나서야 문제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열이 나갈 길이 없습니다. 방진과 방수를 하려면 외피를 닫아야 하고, 닫으면 공기가 흐르지 않죠. 팬을 달 만한 자리는 이미 부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발열원인 배터리팩은 하필 가장 안쪽. 그래서 계산을 해 봤습니다. 밀폐된 상자가 자연대류와 복사만으로 열을 버릴 때, 표면적 0.6제곱미터에 열전달계수를 10W/m²K로 놓으면, 300와트를 버리기 위해 필요한 온도차는 300 나누기 6, 즉 섭씨 50도입니다. 실온 25도라면 외피가 75도가 되어야 열이 겨우 균형을 맞춥니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견디는 상한은 대개 45도에서 60도 사이입니다. 숫자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짚어 둘 것은 이 계산이 정밀 해석이 아니라 자릿수 확인이라는 점입니다. 열전달계수와 표면적, 발열량은 모두 제가 가정한 값이고 실제 설계는 이보다 복잡합니다. 다만 자릿수가 이렇게 안 맞으면 세부를 다듬어도 결론은 바뀌지 않습니다.
열은 토크와 연산 속도를 동시에 깎습니다
열이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부품이 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성능이 실시간으로 내려갑니다. 모터는 뜨거워지면 권선 저항이 올라가고, 같은 전류로 낼 수 있는 토크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로봇은 달리는 동안 조금씩 약해집니다. 프로세서는 온도 상한에 닿으면 클럭을 스스로 낮춥니다. 판단이 느려진다는 뜻이죠. 균형 제어는 밀리초 단위로 도는 일이라, 연산이 느려지면 그대로 비틀거림이 됩니다. 배터리는 더 예민합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수명이 깎이고, 보호 회로가 출력을 제한합니다. 정리하면 하나의 열원이 근력과 반사와 지구력을 동시에 잠식합니다. 여기에 이 문제를 더 지독하게 만드는 사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로봇의 모터는 가만히 서 있을 때도 전류를 태웁니다. 사람은 무릎을 펴서 뼈로 버티지만 로봇은 자세 유지에도 토크를 계속 내야 하니까요. 쉬는 동안에도 열이 쌓입니다. 사람과 비교하면 격차가 더 선명해집니다. 사람도 격한 운동 중에는 1킬로와트에 가까운 열을 냅니다. 다만 시간당 1.5리터쯤 땀을 흘려 증발로 버립니다. 로봇에게는 땀이 없습니다. 그래서 얼음을 멨습니다.
1년 뒤 기록을 두 시간 줄인 것은 냉각이었습니다
2026년 4월 19일 같은 대회에서 아너 라이트닝이 50분 26초를 기록했습니다. 평균 초속 7미터, 시속 25킬로미터입니다. 전해에 나온 로봇 최고 기록보다 두 시간 가까이 빠르고, 인간 하프마라톤 세계기록 56분 42초보다도 앞섭니다. 여기서 정직하게 짚을 것이 있습니다. 여러 보도가 인간 기록을 7분 앞질렀다고 전했는데, 공인 기록으로 직접 계산하면 6분 16초입니다. 어느 쪽이든 로봇이 앞선 것은 맞지만 숫자는 정확히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도약이 어디서 나왔는지입니다. IEEE 스펙트럼의 설명에 따르면 냉각 배관이 모세혈관처럼 모터 안쪽까지 파고들고, 열교환 유량은 분당 4리터를 넘고, 하체 구동 모터 네 개가 각각 독립된 액체 냉각 회로를 가집니다. 무릎 모터 하나가 버리는 열이 약 150와트로 보고됐는데, 하체 네 개만 더해도 600와트입니다. 앞에서 계산한 밀폐 토르소의 한계와 나란히 놓으면 왜 배관을 모터 속까지 밀어 넣어야 했는지가 설명됩니다. 공기로는 애초에 불가능한 양이었습니다. 다른 보도에서는 액체와 공기 냉각을 함께 써서 관절 온도를 70~80도에서 60도 근처로 낮췄다고도 전합니다.
맺음말
휴머노이드 기사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단어는 두뇌입니다. 어떤 모델을 얹었고 몇 조 개의 파라미터인지가 제목이 되죠. 그런데 지난 1년 동안 같은 코스의 기록을 두 시간 줄인 것은 새로운 모델이 아니라 배관이었습니다. 저는 도면을 그려 보고 나서야 이 순서를 납득했습니다. 열을 버릴 길을 만들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판단도 5분 뒤에는 느려진 클럭 위에서 돌아갑니다. 현장에서 로봇이 한 시간쯤 일하고 쉬는 이유도 대개 배터리 잔량표보다 온도계에 적혀 있습니다. 다음에 휴머노이드 사양표를 보실 때는 파라미터 수 대신 냉각 방식이 뭐라고 적혀 있는지 먼저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칸이 비어 있으면, 그 로봇은 아직 데모용입니다.
참고 자료
- IEEE Spectrum, "How Liquid Cooling Let a Humanoid Robot Shatter Half Marathon Records" — 2026년 기록과 액체 냉각 구조, 무릎 모터 방열량 — 원문 링크
- CNN, "Chinese robots ran against humans in the world's first humanoid half-marathon" (2025.4.19) — 대회 개요와 과열·낙오 상황 — 원문 링크
- ASSEMBLY, "Robot Sets World Record as First Humanoid to Complete Half-Marathon" — 톈궁 울트라 제원과 배터리 3회 교체 — 원문 링크
- TWS, "Humanoid Robot Battery Challenges" — 팩 용량 2kWh 미만·구동 2~4시간, 밀폐 토르소의 방열 난점 — 원문 링크
- Large Battery, "Battery Design Challenges for Humanoid Robots" — 배터리팩이 로봇 질량의 약 8분의 1, 냉각 방식(그래핀 패드·액체 마이크로채널·상변화물질) — 원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