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사기 전에 화면 속에서 먼저 써봤습니다 (4편) — 다음 로봇 고르기: 왜 Franka Panda인가
모델 폴더를 열었더니 로봇이 70종 넘게 들어 있었습니다. 고를 것이 많다는 소식이 반갑지 않았습니다. 3편에서 확인한 것은 "SO-101로는 상자를 못 집는다"였지, "그럼 무엇으로 바꾸느냐"가 아니었으니까요. 이번 편은 답을 고르는 과정 자체를 남깁니다. 이 시리즈의 진짜 목적인 안목이 그대로 나오는 대목이라서입니다.
후보는 이미 다 있었습니다
MuJoCo에는 Menagerie라는 공식 로봇 모델 모음이 있습니다. 로봇팔, 사족보행, 휴머노이드, 손까지 70종이 넘게 무료로 공개돼 있습니다. 이름만 훑어도 규모가 짐작됩니다.
- 로봇팔 — Franka Panda, UR5e·UR10e, KUKA iiwa, Kinova, xArm, Trossen ViperX·WidowX
- 사족보행 — Unitree Go1·Go2, ANYmal, Boston Dynamics Spot
- 휴머노이드 — Unitree G1·H1, Apptronik Apollo, PAL Talos. 현장에 배치되고 있는 기종들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 손과 그리퍼 — Shadow Hand, Allegro, Robotiq 2F-85
여러 로봇을 하나씩 갈아 끼워 볼 수 있는 환경이 이미 갖춰져 있다는 뜻입니다. 제 장기 목표가 여러 기종을 이해하는 것이니 조건은 나쁘지 않았죠.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목록을 훑으면서 알았는데, 후보가 많다는 것은 고르기 쉽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기준 없이 목록을 보면 결국 이름값으로 고르게 됩니다. 이름값으로 고르는 것은 3D 프린터를 살 때 제가 이미 해 본 방식이고, 그 결과가 창고 선반에 있습니다.
첫 갈림길은 성능이 아니라 그리퍼였습니다
그래서 로봇팔 모델부터 두 부류로 갈라 봤습니다. 기준은 단순합니다. 그리퍼가 붙어 있느냐, 아니냐.
한쪽은 팔과 그리퍼가 통합된 모델입니다. Franka나 Trossen처럼 받자마자 바로 집기를 시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쪽은 팔만 있는 모델입니다. UR5e나 KUKA가 여기에 속하고, 집으려면 Robotiq 같은 그리퍼를 직접 결합해야 합니다. 관절을 통째로 파는 통합 액추에이터가 산업에서 왜 팔리는지와 비슷한 이야기죠. 통합은 성능이 아니라 시간을 삽니다.
3편에서 형상 하나 때문에 며칠을 날린 직후라, 저에게는 이 구분이 스펙표의 어떤 항목보다 앞섰습니다. 그래서 첫 로봇은 통합형에서 고르기로 했습니다.
세 후보를 한 표에 놓고 채워 봤습니다
최종 후보는 셋으로 좁혔습니다. Franka Panda, UR5e에 Robotiq 2F-85를 결합한 구성, 그리고 Trossen ViperX 300입니다. 머릿속으로 비교하면 계속 결론이 바뀌길래, 항목을 정해 놓고 하나씩 채워 넣었습니다.
표를 채우면서 한 가지를 조심했습니다. 자유도나 그리퍼 구성처럼 공개 사양으로 확인되는 항목과, 어느 쪽이 배우기 좋은지 같은 제 판단을 섞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점 같은 항목은 넣지 않았습니다. 세 기종은 우열 관계가 아니라 성격이 다른 장비입니다.
쉬운 것을 고르면 배움이 얕아질까 걱정했습니다
고민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잘 갖춰진 로봇을 고르면 편하게 넘어가는 만큼 배움도 얕아지는 것 아닐까. 어려운 쪽을 골라야 실력이 붙는다는 생각이 있었죠.
결론은 반대였습니다. 3편에서 절실히 느낀 것이 있습니다. 하드웨어와 설정의 함정과 싸우는 시간은 로봇을 이해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냥 삽질하는 시간입니다. 손가락이 테이블을 파고드는 이유를 알아내느라 며칠을 썼지만, 그동안 제어에 대해 배운 것은 없었죠. 잘 갖춰진 로봇은 그 잡음을 걷어내고 제어와 작업과 비교라는 본론에 시간을 쓰게 해 줍니다.
생각해 보면 현장에서도 같습니다. 설비가 자꾸 서면 작업자는 제품이 아니라 설비를 들여다보게 되죠. 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도구가 안정적이어야 도구 너머가 보입니다.
그래서 세 후보 모두 좋지만 첫 로봇은 Franka Panda로 정했습니다. 이유는 셋입니다.
하나, 삽질 없이 픽앤플레이스가 바로 됩니다. SO-101 실패 직후라 제대로 되는 것을 빨리 한 번 경험하는 편이 중요했습니다. 둘, 여기서 재사용 가능한 작업 흐름을 확립해 두면 이후 다른 로봇으로 갈아 끼울 때 훨씬 수월합니다. 물체를 놓고, 집고, 동작을 엮고, 결과를 기록하는 순서 말입니다. 셋, 연구용 표준이라 자료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막혔을 때 해결이 빠릅니다.
MuJoCo에서 Franka Panda로 직접 돌려 본 픽앤플레이스 장면입니다. 5편에서 이 결과를 SO-101과 나란히 놓고 따져 봅니다. 영상: Humanoid Now
그다음 계획은 이렇게 넓힙니다. UR5e에 Robotiq을 붙인 구성은 공장에서 실제로 쓰는 협동로봇이라, 금형 쪽에서 15년을 보낸 제 배경과 가장 직접 연결됩니다. 그리퍼를 직접 결합해야 한다는 점도 이제는 단점이 아니라 배울 거리로 보입니다. 실제 도입에서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그 결합이니까요.
Trossen ViperX와 ALOHA는 SO-101과 같은 LeRobot 계열이라 지금까지 배운 것이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 뒤에 사족보행과 휴머노이드로 넘어가면 팔을 넘어선 이해가 생기겠죠.
맺음말
무엇을 살까를 고르기 전에, 무엇을 왜 고르는가의 기준부터 세우는 것. 이것이 안목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편에서 세운 기준은 네 단계였습니다. 작업 적합성, 그리퍼 통합 여부, 자료와 생태계, 학습 효율. 순서가 중요합니다. 저는 3편에서 첫 단계를 건너뛰었다가 며칠을 잃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같은 명령을 Franka에 그대로 줍니다. 코드는 거의 같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두 로봇이 제품으로서 얼마나 다른지를 스펙으로 재 봅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