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EK 소재, 휴머노이드 10kg 다이어트의 비밀

2023년 12월, 테슬라가 옵티머스 2세대를 공개했을 때 영상의 주인공은 계란을 조심스럽게 집는 손가락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발표 내용의 한 줄이 더 오래 남더군요. 이전 세대보다 10kg 가벼워졌고, 걷는 속도는 30% 빨라졌다는 것. 신형 모터나 새 배터리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재 업계는 이 감량의 공로자로 뜻밖의 후보를 지목했습니다. 플라스틱입니다. 배터리 기술이 몇 년째 제자리인 지금, 휴머노이드의 가동 시간을 늘리는 가장 빠른 길은 배터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고, 그래서 로봇 산업의 조용한 승부처 하나가 소재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기어를 깎을 수 있는 플라스틱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PEEK(폴리에테르에테르케톤)입니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최상위권에 있는 소재로, 밀도가 1.3g/cm³ 안팎이라 알루미늄 합금(2.7g/cm³)의 절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가볍기만 하다면 흔한 플라스틱과 다를 것이 없겠죠. PEEK의 진짜 무기는 금속의 일터에서 버틴다는 점입니다. 250℃ 수준의 고온을 연속으로 견디고, 마찰계수가 0.1~0.2로 낮아 윤활유 없이도 스스로 미끄러지는 자기윤활 성질을 갖습니다. 닳는 데도 강합니다. 덕분에 금속 기어와 베어링이 하던 일, 그러니까 관절 안에서 쉬지 않고 맞물리고 회전하는 부품의 자리를 플라스틱이 대신할 수 있게 됩니다. 윤활유를 주기적으로 넣을 필요가 줄면 유지보수 부담도 함께 줄죠. 옵티머스 2세대의 관절과 사지에 바로 이 소재가 들어갔다는 것이 소재 업계의 분석입니다.

'한 대당 6.6kg'이라는 숫자를 직접 검산해 봤습니다

중국 PEEK 소재 업체 피크차이나(peekchina)의 2025년 5월 자료는 휴머노이드 1대에 들어가는 PEEK를 약 6.6kg으로 추정합니다. 전제는 기어·관절에 순수 PEEK 1kg, 팔다리 골격에 탄소섬유 강화 복합재(CF/PEEK) 8kg. 그런데 1 더하기 8이 왜 6.6이 되는지 궁금해서 직접 계산해 봤습니다. CF/PEEK는 탄소섬유가 약 30% 섞인 복합재이므로 8kg 가운데 순수 PEEK 수지는 5.6kg이고, 여기에 기어·관절의 1kg을 더하면 정확히 6.6kg. 숫자는 맞아떨어지더군요. 테슬라·유비테크·푸리에 로봇의 평균 무게가 58kg 안팎이니 몸무게의 약 11%가 이 플라스틱인 셈이고, 로봇 100만 대가 생산되면 PEEK 6,600톤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됩니다. 다만 한 가지는 정직하게 짚어 두겠습니다. '10kg 감량의 공로가 PEEK'라는 해석과 이 소모량 추정치의 출처는 모두 PEEK를 판매하는 소재 업체입니다. 테슬라가 공식 영상으로 확인해 준 것은 '10kg 가벼워졌고 30% 빨라졌다'까지입니다.

휴머노이드 소재 지도 — 어디에 무엇을 쓰는가① 부위별 소재 분업관절·기어·베어링= PEEK (자기윤활·내마모)팔다리 골격= CF/PEEK(금속 대비 40% 경량)몸통·모터 하우징·외장= 마그네슘·알루미늄 합금비싼 소재는 마모가 심한 곳에만 —부위별로 소재를 나눠 처방합니다② 밀도 비교 (g/cm³)PEEK마그네슘 합금알루미늄 합금티타늄강철1.31.82.74.57.85같은 부피라면 PEEK는 알루미늄의 절반,강철의 6분의 1 무게입니다휴머노이드 1대 = PEEK 약 6.6kg · 100만 대면 6,600톤배터리가 정체된 시대, 몸무게 1kg이 곧 가동 시간입니다자료: peekchina 블로그(2024.12·2025.5) — PEEK 판매사의 추정치로, 테슬라 공식 수치가 아닙니다 · 밀도는 소재별 대표값Humanoid Now · humanoidnow.kr

그렇다면 왜 온몸을 PEEK로 만들지 않을까

이렇게 좋은 소재라면 골격 전체를 PEEK로 찍으면 될 텐데, 어느 회사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가격표에 있습니다. PEEK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가운데서도 최상위 가격대의 소재로, 킬로그램당 가격이 알루미늄과는 자릿수가 다릅니다. 340℃가 넘는 온도에서 성형해야 해서 가공 난도도 높죠. 그래서 실제 설계는 부위별 분업으로 갑니다. 쉬지 않고 마모되는 관절·기어·베어링에는 PEEK, 가벼움이 곧 성능인 팔다리 골격에는 금속 대비 40% 가벼운 CF/PEEK, 열을 빼내고 진동을 눌러야 하는 모터 하우징과 외장에는 마그네슘·알루미늄 합금. 비싼 소재를 아픈 곳에만 처방하는 구조입니다. 중국 증권사 팡정증권 역시 경량화를 휴머노이드 산업의 핵심 흐름으로 꼽으며 마그네슘 합금과 PEEK의 침투율 상승을 전망했습니다. 지난 글 휴머노이드 액추에이터, 원가의 절반을 쥔 관절 전쟁에서 다뤘듯 관절이 원가의 절반을 쥔 부품이라면, 그 관절을 무엇으로 깎느냐가 소재 전쟁의 첫 번째 전선입니다.

맺음말

옵티머스 2세대의 10kg 감량은 모터의 승리가 아니라 저울의 승리였습니다. 배터리 혁신이 정체된 시대에 로봇의 몸무게 1kg은 곧 가동 시간이고, 기동성이고, 양산 단가입니다. 그리고 그 몸무게를 결정하는 것은 도면 이전에 소재입니다. 이번 글은 휴머노이드 소재 연재의 첫 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모터 하우징과 외장을 맡는 마그네슘 합금을, 그다음에는 팔다리를 맡는 탄소섬유를 차례로 다루겠습니다. 휴머노이드가 계란을 집는 영상 뒤에는, 그 손가락을 무엇으로 깎을지 저울질하는 소재 회사들의 전쟁이 먼저 있었습니다.

참고 자료

  • peekchina, "Why PEEK is the Key Material for Tesla's Humanoid Robot Optimus-Gen2?" (2024.12) — 원문 링크
  • peekchina, "Application of PEEK in Humanoid Robots" (2025.5) — 원문 링크
  • Longbridge News, "Fangzheng Securities: Lightweighting is an important industrial trend for humanoid robots" — 원문 링크
  • Tesla 공식 유튜브, "Optimus - Gen 2" 공개 영상 (2023.12) — 영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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