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부품 국산화율 40%대, 벽은 손끝 0.17mm에 있습니다
신규 라인을 셋업할 때 저는 부품표를 위에서부터 훑으며 조달처를 옆 칸에 적어 봅니다. 브래킷과 하우징 가공, 케이블 하니스, 프레임 구조재. 여기까지는 국내 업체 이름으로 칸이 채워집니다. 그런데 커서가 구동계 줄에 닿으면 손이 멈추더군요. 정밀 감속기, 고정도 엔코더, 고응답 서보 드라이브. 이 세 줄에서는 습관처럼 독일과 일본 메이커의 카탈로그를 먼저 펼칩니다. 국내에서 휴머노이드 시제기가 쏟아지는 2026년에도, 정작 그 안에서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부품의 조달처는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40%대라는 숫자는 어디가 비어 있다는 뜻일까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026년 1월 25일 발표한 보고서 '글로벌 로보틱스 산업 지형 변화와 한·일 공급망 비교 및 시사점'은 이 어긋남을 숫자로 보여 줍니다. 한국의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기준 세계 1위, 산업용 로봇 설치 대수는 세계 4위입니다. 그런데 로봇 소재·부품의 국산화율은 40%대에 그칩니다. 총출하액의 71.2%가 내수에 묶여 있고, 감속기와 모터 같은 핵심 부품은 하모닉드라이브·야스카와전기 등 일본 기업이 글로벌 시장의 60~70%를 쥐고 있습니다. 모터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의 중국 의존도는 88.8%입니다. 보고서는 이 구조를 "다운스트림 경쟁력에 비해 업스트림과 미드스트림 취약성이 누적된 구조"라고 표현했습니다. 로봇을 많이 쓰고 많이 만들수록 부품 수입도 같이 늘어난다는 뜻이죠. 다만 40%대라는 수치를 읽을 때 하나는 짚어 두어야 합니다. 이 숫자는 평균일 뿐, 국산이 '어느 등급까지' 닿는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벽으로 느껴지는 것은 비중이 아니라 등급입니다.
30arcsec이 손끝에서 얼마가 되는지 계산해 봤습니다
감속기 카탈로그를 열면 각전달오차가 수십 arcsec 단위로 적혀 있습니다. arcsec은 1도의 3,600분의 1이라 감이 잘 오지 않죠. 그래서 직접 계산해 봤습니다. 1arcsec은 라디안으로 약 0.00000485이므로, 팔 길이 1m 끝에서는 0.005mm입니다. 여기에 사람 팔 비율을 대입해 봤습니다. 어깨에서 손끝 0.7m, 팔꿈치에서 손끝 0.35m, 손목에서 손끝 0.1m. 세 관절 모두 각전달오차 30arcsec짜리 감속기를 썼다고 가정하면 어깨가 0.102mm, 팔꿈치가 0.051mm, 손목이 0.015mm를 보태 합계 0.167mm가 나옵니다.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두 배가 넘습니다. 커넥터를 꽂거나 나사를 물리는 작업에서는 이미 실패하는 크기죠. 등급을 한 단계 낮춰 60arcsec으로 잡으면 0.33mm까지 벌어집니다. 정직하게 덧붙이면 이 값은 최악의 오차가 같은 방향으로 겹친다고 본 단순 상한입니다. 실제로는 백래시와 링크의 탄성 변형까지 더해지니 방향이 다를 뿐 크기가 줄지는 않습니다. 카탈로그의 두 자릿수 차이가 손끝에서 밀리미터의 승부로 증폭되는 것, 이것이 정밀 감속기가 부품 하나를 잘 깎는 문제가 아닌 이유입니다.
국산화에 성공하고도 13년이 더 걸렸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부품을 못 만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에스비비테크는 2013년에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하모닉 감속기를 개발해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기술의 문을 연 지 벌써 십 년이 넘었죠. 그런데 이 회사가 액추에이터 전용 공장을 세워 시양산에 들어가고 감속기 사업부를 천안 공장으로 전면 이전하는 시점은 2026년 3월입니다. 증권가가 흑자 전환을 전망하는 해도 2026년입니다. 국산화 성공 선언과 양산 안정화 사이에 십 년이 넘는 간격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병목이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같은 등급으로 매번 만들 수 있는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밀 감속기의 수치는 가공과 열처리, 조립과 검사가 하나의 공정 체계로 묶여야 나옵니다. 그 체계를 다듬는 학습 곡선은 물량을 먹고 자라는데, 로봇용 정밀 부품은 자동차나 IT 부품에 비해 절대 물량이 턱없이 적습니다. 만들수록 좋아지는 부품인데, 만들 기회 자체가 적은 셈이죠. 여기에 베어링·엔코더·서보 드라이브가 서로 검증된 조합으로 납품 이력을 쌓는 생태계까지 겹칩니다. 단품 성능이 좋아도 '검증된 세트'의 자리로 들어가기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국산화는 저가 대체가 아닙니다
현장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착각은 국산화를 값싼 대체품 조달로 여기는 프레임입니다. 완성체 메이커가 원하는 것은 싼 부품이 아니라 수율이 보장된 등급입니다. 앞의 0.17mm 계산이 그 이유죠. 등급이 한 칸 내려가면 로봇이 할 수 있는 작업의 목록이 통째로 줄어듭니다. 뿌리기업이 이 문을 두드리기 어려운 이유도 기술력보다는 양산 안정성을 입증하는 비용과 대기업 납품 네트워크에 진입하는 비용에 있습니다. 시험 설비 한 대 값이 초도 수주액을 넘어서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로봇산업진흥원(KIRIA)과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같은 기관이 운영하는 공동활용 장비와 시험인증 지원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혼자 전 공정을 갖추는 대신 공공 인프라로 검증하고 양산은 분업하는 경로입니다. 관절 하나가 로봇 원가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경로를 여는 일은 부품업계만의 숙제가 아닙니다. 감속기 안에서 100배의 감속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로봇 감속기, 톱니 두 개가 100배를 만듭니다에서, 그 관절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몫은 휴머노이드 액추에이터, 원가의 절반을 쥔 관절 전쟁에서 다뤘습니다.
맺음말
로봇 밀도 세계 1위와 부품 국산화율 40%대는 같은 나라의 성적표입니다. 로봇을 가장 열심히 쓰는 나라가, 로봇을 움직이는 부품은 가장 열심히 사 오고 있습니다. 이 간극은 기술이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등급과 물량과 이력이 쌓일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생긴 것에 가깝습니다. 손끝 0.17mm는 카탈로그의 두 자릿수가 현장에서 얼마나 크게 벌어지는지를 보여 주는 숫자이자, 국산화가 가격표가 아니라 등급의 문제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밸류체인의 다른 축, 그러니까 국내 완성체 기업들이 실제로 어떤 부품 조합으로 시제기를 만들고 있는지를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글로벌 로보틱스 산업 지형 변화와 한·일 공급망 비교 및 시사점" (2026.1.25) — 보도 정리: ZDNet Korea, 헤럴드경제
- ZDNet Korea, "에스비비테크 '로봇 감속기 양산 체계화…내년 3월 천안 이전'" (2025.11.10) — 원문 링크
- 전자신문, "에스비비테크 '감속기 커스터마이징·가격 경쟁력으로 日 하모닉 드라이브 도전장'" (2024.5.6) — 원문 링크
- 손끝 오차 0.167mm는 각전달오차 30arcsec과 팔 길이 0.7m·0.35m·0.1m를 가정해 필자가 계산한 값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