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의 종착역은 챗봇이 아니라 로봇이었다

2026년 5월 20일,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이 투자자들 앞에 앉았습니다. 500억 위안, 우리 돈 약 10조 원을 모으는 4시간짜리 비공개 설명회였죠. 그 자리에서 그는 뜻밖의 말을 합니다. 월드 모델도, 임바디드 인텔리전스(신체를 가진 AI)도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온 세계가 휴머노이드에 열광하는 시기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AI 창업자가 로봇을 뒤로 미룬 겁니다. 그런데 유출된 녹취록을 끝까지 읽어 보면 이야기가 뒤집힙니다. 그가 그린 로드맵의 마지막 칸에는 로봇이 있었습니다.

118개의 답변에서 로봇이 나오는 자리를 세어봤습니다

이 설명회 녹취록은 중국 인터넷에 '118개 문답' 형태로 유출되어 돌았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주요 매체가 그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전문을 읽으며 로봇 관련 발언이 몇 번 나오는지 직접 세어봤는데, 실질적인 대목은 딱 두 곳뿐이더군요. 대신 그 두 곳이 로드맵의 구조를 보여 줍니다. 량원펑이 말한 계단은 이렇습니다. 작년의 계단은 CoT, 즉 생각의 사슬로 추론 능력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올해의 계단은 에이전트, 그중에서도 코딩 에이전트입니다. 다음 계단이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못 박은 지속 학습, 곧 모델이 배포된 뒤에도 계속 배우는 능력입니다. 그다음은 AI가 다음 버전의 AI를 스스로 개선하는 자기 반복. 그리고 맨 마지막 계단에 임바디먼트, 로봇이 놓여 있습니다. 로봇을 미룬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순서를 정해 둔 것이었습니다.

딥시크의 다섯 계단 — 량원펑이 말한 AGI 로드맵2026년 5월 투자 설명회 발언 순서대로 재구성 (비공식 유출 녹취록 기준)① CoT 추론"작년의 계단"생각의 사슬 · R1② 에이전트"올해의 계단"코딩 에이전트 우선③ 지속 학습"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배포 후에도 계속 배우기지금 여기 ▼④ 자기 개선AI가 다음 버전의AI를 만든다⑤ 임바디먼트종착점 — 물리 세계"로봇이 다음 로봇을설계하기를 바란다""보통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물리적 필요를 채워 주는 임바디드 인텔리전스다"자료: 량원펑 투자 설명회 유출 녹취록(2026.5) · The China Academy · Momentum WorksHumanoid Now · humanoidnow.kr

로봇이 다음 로봇을 설계한다는 문장의 무게

녹취록에서 가장 오래 눈이 머문 문장은 이것이었습니다. "임바디먼트가 오면, 그것이 다음 세대의 임바디드 시스템을 만들기를, 즉 다음 로봇을 설계하기를 바란다." 딥시크가 그리는 자기 개선의 고리를 하드웨어까지 연장한 선언입니다. AI가 다음 버전의 AI를 훈련시키듯, 로봇이 다음 세대 로봇의 설계도를 그리는 구조죠. 이유도 명료합니다. 보통 사람이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밥을 차리고 짐을 옮겨 주는 물리적 능력이고, 인간의 노동 수요를 채우는 것이 목표라면 신체는 피할 수 없다는 겁니다. 구글이 제미나이 로보틱스 2로 '하나의 두뇌'를 모든 로봇에 이식하려는 것과 같은 결론에, 딥시크는 반대쪽 끝에서 도착한 셈입니다. 두뇌를 만드는 회사들은 결국 전부 몸을 향합니다.

배터리 회사는 왜 이 판에 1조 원을 걸었을까

이 로드맵을 믿고 모인 돈의 면면이 흥미롭습니다. 로이터와 CNBC 보도에 따르면 이번 500억 위안 라운드에는 텐센트가 100억 위안, 중국 국가AI펀드가 직접 투자로 참여했고, 배터리 세계 1위 CATL이 약 50억 위안, 우리 돈 1조 원 규모를 검토했습니다. 량원펑 본인도 이 라운드에 200억 위안을 넣었습니다. 창업자가 자기 로드맵에 4조 원을 다시 거는 셈이죠. 언어 모델 회사에 배터리 회사가 조 단위를 거는 그림은, 이 로드맵의 종착점이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전기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것을 알아야 이해가 됩니다. 투자 후 기업가치는 약 70조 원, 두 달 뒤인 7월에는 상장을 앞두고 100조 원대 기업가치로 추가 조달을 논의한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다만 정직하게 짚어 두겠습니다. 이 녹취록은 딥시크가 공식 확인한 문서가 아닌 유출본이고, 량원펑은 '마지막 목적이 로봇'이라고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종착점은 임바디먼트일 수 있다"였고, CATL 등 일부 투자자는 보도 시점 기준 '참여 검토' 단계였습니다.

맺음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값싸게 최고 성능 모델을 만든 회사가, 로봇을 지금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면서 로드맵의 마지막 칸에는 로봇을 적어 두었습니다. 순서는 소프트웨어가 먼저지만 종착역은 물리 세계라는 것. 이것이 딥시크만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이 피지컬AI 산업에는 더 중요합니다. 구글도, 오픈AI도, 그리고 항저우의 이 조용한 회사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침 중국 로봇 업계는 2026년을 '임바디드 AI 양산 원년'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유니트리 같은 하드웨어 회사들은 딥시크가 언어 모델에서 했던 오픈소스 전략을 로봇에서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다섯 계단 중 셋째 칸에 서 있는 회사가 다섯째 칸에 도착하는 날, 휴머노이드 시장의 판도는 지금과 상당히 다른 모습일 겁니다.

참고 자료

  • The China Academy, "Alleged Leaked Transcript of DeepSeek CEO: 118 Answers on His Roadmap" — 원문 링크
  • Momentum Works, "Full transcript of DeepSeek founder Liang Wenfeng's fundraising meeting" — 원문 링크
  • CNBC, "DeepSeek slated to draw $7 billion in maiden fundraising, sources say" (2026.6.3) — 원문 링크
  • Reuters(마닐라타임스 게재), "China's DeepSeek to raise fresh capital at $74 billion valuation ahead of onshore IPO" (2026.7.20) — 원문 링크
  • South China Morning Post, "What leaked comments reveal about DeepSeek's Liang Wenfeng" — 원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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