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외피 전쟁: 갑옷이냐, 니트 슈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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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의 휴머노이드 로봇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성능 스펙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겉'입니다. 피규어 03과 테슬라 옵티머스, 앱트로닉 아폴로는 단단한 갑옷 같은 외피를 둘렀고, 1X의 NEO는 스웨터처럼 짠 니트 슈트를 입었습니다. 최근 한 분석은 이 외피가 단순한 스타일링이 아니라 로봇의 사용 환경과 안전, 심리적 거부감(불쾌한 골짜기)까지 결정하는 '첫 번째 전략'이라고 짚었습니다. 국내에는 액추에이터와 AI 이야기만 넘치는데, 오늘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로봇의 '옷'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외피는 '나중에 입히는 옷'이 아닙니다 보통 우리는 제품 디자인을 이렇게 상상합니다. 엔지니어가 속을 다 만들고 나면, 디자이너가 마지막에 예쁜 껍데기를 씌운다. 그런데 휴머노이드에서는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외피를 무엇으로 할지 먼저 정하고, 그 결정이 내부 설계 전체를 옭아맵니다. 단단한 패널로 감쌀지 부드러운 천으로 덮을지에 따라 모터를 어디에 몰아넣을지, 열을 어디로 뺄지, 소음 목표를 어디에 맞출지, 무게 중심을 어떻게 잡을지가 전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이건 나중에 바꿀 수 없습니다. 노출된 금속 패널로 열을 빼도록 설계한 로봇에 뒤늦게 니트를 씌우면 열이 갇혀 버립니다. 반대로 조용하고 말랑하게 만든 로봇을 나중에 갑옷으로 무장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외피 결정은 '관절이나 센서를 어디 둘까'보다 더 앞선, 로봇의 운명을 가르는 첫 단추입니다. 휴머노이드 외피 전쟁 — 두 갈래 전략 기준 하드쉘 (갑옷) 니트 슈트 대표 로봇 피규어 03 · 옵티머스 · 아폴로 1X NEO 외피 소재 강성 패널(금속·복합재) 3D 니트 나일론 한 벌 겨냥한 공간 공장 · 창고(감독 구역) 가정(거실 · 주방) 우선 가치 충격저항 · 정비성 · 방열 안전감 · 저소음 · 친근함 소음 구동부 노출 냉장고 수준...

PEEK 소재, 휴머노이드 10kg 다이어트의 비밀

2023년 12월, 테슬라가 옵티머스 2세대를 공개했을 때 영상의 주인공은 계란을 조심스럽게 집는 손가락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발표 내용의 한 줄이 더 오래 남더군요. 이전 세대보다 10kg 가벼워졌고, 걷는 속도는 30% 빨라졌다는 것. 신형 모터나 새 배터리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재 업계는 이 감량의 공로자로 뜻밖의 후보를 지목했습니다. 플라스틱입니다. 배터리 기술이 몇 년째 제자리인 지금, 휴머노이드의 가동 시간을 늘리는 가장 빠른 길은 배터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고, 그래서 로봇 산업의 조용한 승부처 하나가 소재로 옮겨 가고 있습니다. 기어를 깎을 수 있는 플라스틱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PEEK(폴리에테르에테르케톤)입니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최상위권에 있는 소재로, 밀도가 1.3g/cm³ 안팎이라 알루미늄 합금(2.7g/cm³)의 절반이 채 되지 않습니다. 가볍기만 하다면 흔한 플라스틱과 다를 것이 없겠죠. PEEK의 진짜 무기는 금속의 일터에서 버틴다는 점입니다. 250℃ 수준의 고온을 연속으로 견디고, 마찰계수가 0.1~0.2로 낮아 윤활유 없이도 스스로 미끄러지는 자기윤활 성질을 갖습니다. 닳는 데도 강합니다. 덕분에 금속 기어와 베어링이 하던 일, 그러니까 관절 안에서 쉬지 않고 맞물리고 회전하는 부품의 자리를 플라스틱이 대신할 수 있게 됩니다. 윤활유를 주기적으로 넣을 필요가 줄면 유지보수 부담도 함께 줄죠. 옵티머스 2세대의 관절과 사지에 바로 이 소재가 들어갔다는 것이 소재 업계의 분석입니다. '한 대당 6.6kg'이라는 숫자를 직접 검산해 봤습니다 중국 PEEK 소재 업체 피크차이나(peekchina)의 2025년 5월 자료는 휴머노이드 1대에 들어가는 PEEK를 약 6.6kg으로 추정합니다. 전제는 기어·관절에 순수 PEEK 1kg, 팔다리 골격에 탄소섬유 강화 복합재(CF/PEEK) 8kg. 그런데 1 더하기 8이 왜 6.6이 되는지 궁금해서 직접 계산해 봤습니다. CF/PE...

피지컬 AI는 가상에서 먼저 넘어집니다 — 엔비디아 Newton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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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가 얼음판 같은 바닥에서 미끄러지다 균형을 잡는 영상에는 으레 이런 댓글이 달립니다. "저걸 배우려고 몇 번이나 넘어졌을까." 정답은 뜻밖에도 '거의 넘어지지 않았다'입니다. 넘어진 것은 실물 로봇이 아니라 GPU 안에서 병렬로 돌아가는 수천 개의 가상 분신들이었죠. 저는 지금 휴머노이드 경쟁의 절반은 강철이 아니라 이 보이지 않는 가상 훈련장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훈련장의 바닥, 즉 물리엔진이 지금 막 세대교체를 겪는 중입니다. 로봇 훈련장은 이제 현실이 아니라 GPU 안에 있습니다 실물 로봇으로 시행착오를 겪는 훈련은 느리고 비쌉니다. 넘어질 때마다 부품이 상하고, 하루 종일 돌려도 시도 횟수는 수백 번이 한계죠. 그래서 업계는 물리 법칙을 계산으로 재현한 가상 세계에서 로봇을 수백만 번 훈련시킨 뒤 그 결과를 실물에 옮기는 방식, 이른바 심투리얼(sim-to-real)을 표준으로 삼아 가고 있습니다. 이 흐름의 한복판에 엔비디아가 구글 딥마인드, 디즈니 리서치와 함께 만든 오픈소스 물리엔진 뉴턴(Newton) 이 있습니다. 2025년 9월 로봇 학습 학회(CoRL)에서 처음 공개됐고, 2026년 4월 미국 로봇 주간에 맞춰 1.0 정식판이 나왔습니다. 관리 주체가 특정 기업이 아니라 리눅스 재단이라는 점, 그리고 시뮬레이터 아이작 심(Isaac Sim) 6.0과 학습 프레임워크 아이작 랩 3.0에서 갈아 끼울 수 있는 물리 백엔드로 들어갔다는 점이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훈련장의 바닥재를 누구나 뜯어보고 고칠 수 있게 공개한 셈이죠. 이미지: 뉴턴 아키텍처 — 워프(Warp) 기반 위에 물리 솔버를 얹고 MuJoCo Playground·아이작 랩과 호환됩니다. 엔비디아 공식 블로그 기준 휴머노이드 시뮬레이션에서 70배 이상 가속(MuJoCo-Warp). ⓒ NVIDIA 개발자 블로그 접촉 계산이 왜 어려운지, 블록 하나를 직접 떨어뜨려 봤습니다 물리엔진의 어디가 그렇게 어려운 ...

저가 휴머노이드 600만 원 시대, 가격표가 판을 바꿉니다

CES 2026 부스터 로보틱스 부스에서 가장 먼저 동난 것은 팸플릿이 아니라 로봇이었습니다. 교육·연구용 소형 휴머노이드 K1이 공개 몇 시간 만에 준비 물량 완판을 기록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죠. 관람객을 줄 세운 것은 백플립도 쿵후 시범도 아닌 가격표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올해 휴머노이드 산업의 방향을 가장 정확히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의 축이 '누가 더 잘 걷는가'에서 '누가 더 싸게 파는가'로 옮겨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4,900달러 휴머노이드는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가격 전쟁의 포문은 유니트리(Unitree)가 열었습니다. 2025년 7월 공개된 R1은 키 121cm, 무게 25kg, 관절 자유도 26개짜리 휴머노이드인데, 기본형이 5,900달러, 경량형 R1 Air는 4,900달러입니다. 원화로 환율에 따라 600만~700만 원대. 대학 연구실 장비 예산으로 살 수 있는 값입니다. 불과 1년 전인 2024년에 같은 회사의 G1이 1만 6,000달러로 '파격'이라 불렸는데, 그 3분의 1 수준까지 내려온 셈이죠. CES 2026에서는 이 흐름에 다른 회사들이 올라탔습니다. 앞차기 시범으로 화제를 모은 엔진AI(EngineAI)는 성인 크기 T800을 2만 5,000달러부터라고 발표했고, 소형 PM01은 1만 4,000달러 안팎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보컵 우승팀들이 쓰는 부스터 T1도 2만 9,800달러부터 시작합니다. 한 가지는 짚어 두겠습니다. R1의 가격은 CES에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 반년 전에 공개된 것으로, CES 2026은 이 가격들이 한자리에 모여 '저가 라인업'이라는 시장이 눈에 보이게 된 무대였습니다. 가격을 낮추려면 도면부터 단순해져야 합니다 이 가격이 단순한 출혈 경쟁일까요. 궁금해서 휴머노이드 관절 모듈 두 방식의 구성 부품을 직접 세어 정리해 봤습니다. 정밀 감속기(하모닉 드라이브)를 쓰는 전통 방식은 모터, 웨이브 제너레이터·플렉스플라인·서큘...

휴머노이드 로봇 다음 5년, 부품이 한 단계 더 나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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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에서 부품의 달력을 확인했습니다. 두뇌는 이미 도착했고, 손끝은 시제품이 나왔으며, 심장은 2027년에 예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에는 다음 장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다음 장을 넘겨 보려 합니다. 미리 분명히 해 두겠습니다. 전편이 발표된 일정의 정리였다면, 이번 글은 추세 위에 세운 시나리오입니다. 날짜는 확정이 아니고, 방향은 근거가 있습니다. 그 구분을 지키면서 부품 세 가지가 한 단계씩 더 나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공장 라인에서 일하는 휴머노이드 이미지 — Humanoid Now (AI 생성 이미지) 두뇌: 실행하는 로봇에서 배우는 로봇으로 젯슨 토르가 연 것은 "실행"입니다. 학습된 모델을 로봇 몸 안에서 돌리는 단계죠. 다음 단계는 "학습"입니다. 칩의 와트당 성능이 지금 추세대로 두어 세대 더 오르고 메모리가 커지면, 로봇이 현장에서 사람의 시연 몇 번을 보고 새 작업을 스스로 익히는 온디바이스 학습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왜 큰일이냐면, 지금 로봇 도입의 숨은 비용이 하드웨어가 아니라 "가르치는 비용"이기 때문입니다. 엔지니어가 몇 주씩 붙어 작업을 프로그래밍하는 대신 숙련공이 세 번 시범을 보이면 끝난다면, 로봇 도입의 손익분기점은 완전히 다시 계산됩니다. 이 단계가 열어줄 곳은 대기업 공장이 아닙니다. 작업이 매주 바뀌는 중소 공장, 메뉴가 계절마다 바뀌는 주방, 로봇 엔지니어를 고용할 수 없는 모든 현장입니다. 손끝: 손끝 센서에서 전신 피부로 디지트 360이 보여준 것은 손끝 하나였습니다. 다음 단계는 면적입니다. 손바닥으로, 팔뚝으로, 몸통으로 넓어지는 대면적 전자피부죠. 여기서 놓치기 쉬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전신 촉각이 푸는 문제는 성능이 아니라 자격이라는 점입니다. 산업 현장에서 로봇이 울타리 없이 사람 옆에서 일하려면, 접촉을 즉시 감지하고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지금 협동로봇이 관절 토크 감지로 그 자격을 얻...

휴머노이드 내구성, 발로 차 보면 드러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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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플립을 성공한 로봇에게 박수가 쏟아지던 순간, 부품 하나가 관중석 쪽으로 튀었습니다. 뉴요커 7월 6일자에서 스티븐 위트(Stephen Witt) 기자가 전한 휴머노이드 시연 현장의 한 장면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올해 나온 어떤 장밋빛 전망보다 이 산업의 현재를 정확히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 '로봇이 백플립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천 번을 해도 멀쩡한가'이기 때문입니다. 발길질을 견디는 로봇, 나사가 풀리는 로봇 위트 기자의 기사 제목은 '휴머노이드 로봇은 배치될 준비가 되었는가'입니다. 취재 현장의 풍경은 데모 영상과 사뭇 다릅니다. 균형 성능을 보여 준다며 사람이 로봇을 발로 차는 시연은 이제 업계의 통과의례가 됐고, 배선이 겉으로 드러난 시제품이 그 발길질을 견디는 모습도 그대로 보도됐습니다. 기사가 비중 있게 다룬 1X 테크놀로지스의 가정용 로봇 네오(Neo)는 약 2만 달러에 예약 판매를 시작했지만, 어려운 작업은 여전히 원격지의 사람 조작자가 대신 수행합니다. 무대 위의 로봇은 완성품처럼 보이지만, 무대 뒤에는 노출된 배선과 사람의 손이 있는 셈이죠. 국내에 넘치는 장밋빛 전망 속에서 이런 냉정한 현장 보고가 드물기에, 이번 글에서는 그 간극을 제조 도면의 눈으로 뜯어보려 합니다. 영상: Digital Trends 유튜브 — CES 2026에서 백플립 착지 직후 손 부품이 떨어져 나간 보스턴 다이내믹스 아틀라스 커버는 왜 가장 먼저 떨어져 나갈까, 체결부를 직접 그려봤습니다 관중석으로 날아간 부품은 왜 하필 외장 커버였을까요. 궁금해서 커버 체결부의 단면 상세도를 직접 그려 보고, 볼트 개수와 공차를 따져 봤습니다. 아래 그림의 왼쪽이 그 결과입니다. 외장 커버는 무게를 줄여야 하니 대개 플라스틱이고, 금속 프레임에 소형 볼트 몇 개나 걸쇠로 고정됩니다. 문제는 충격이 커버의 넓은 면이 아니라 체결부라는 '점' 몇 곳으로 모인다는 사실입니다. ...

휴머노이드 액추에이터, 원가의 절반을 쥔 관절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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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CES 2026, 휴머노이드의 관절이 등장한 곳은 로봇 부스가 아니라 자동차 부품관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오랫동안 베어링과 변속기 부품을 만들어 온 독일 셰플러(Schaeffler). 부스에 놓인 것은 걷고 뛰는 완성 로봇이 아니라 손에 잡히는 원통형 부품 하나였지만, 저는 이 원통이 그 어떤 완성 로봇 시연보다 중요한 발표였다고 생각합니다. 휴머노이드 원가의 절반 안팎이 바로 이 덩어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베어링 회사는 왜 로봇 관절에 뛰어들었을까 셰플러가 1월 6일부터 9일까지 열린 CES 2026에서 공개한 것은 휴머노이드 전용 유성기어 액추에이터입니다. 2단 유성기어 감속기, 전기 모터, 위치를 읽는 엔코더, 제어기까지 네 요소를 하나의 하우징에 통합한 관절 모듈이죠. 토크는 60에서 250뉴턴미터로, 어깨·고관절·무릎처럼 힘이 많이 걸리는 큰 관절을 겨냥합니다. 외부 힘에 부드럽게 밀리는 백드라이브 특성과 연속 가동 시의 열 안정성을 내세웠고, 모든 구성품을 자체 생산해 대량생산 품질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회사의 출신입니다. 전기차 전환으로 내연기관 부품 수요가 줄어드는 자동차 부품사에게, 모터와 기어와 베어링으로 만드는 로봇 관절은 낯선 신사업이 아니라 하던 일의 연장이더군요.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1월 8일자 CES 결산에서 이런 부품사들의 진입을 올해 로보틱스 분야의 핵심 흐름으로 꼽았습니다. 영상: 셰플러 공식 유튜브(Schaeffler Group) — CES 2026 휴머노이드 로보틱스 부스 시연 관절 한 개의 단면을 직접 그려봤습니다 발표 자료를 읽다가, 이 원통 안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단면 개념도를 직접 2D로 그려봤습니다. 아래 그림의 왼쪽이 그 결과입니다. 그려 보니 숫자로 읽을 때와는 체감이 다르더군요. 지름 10센티미터 남짓한 원통 안에 모터의 고정자와 회전자, 두 단의 유성기어, 축 양단의 베어링, 뒤쪽의 엔코더와 제어 보드까지 들어가야 하니 빈 공간이...

로봇 손톱, 카드 한 장을 집는 초정밀 촉각의 비밀

시카고에서 열린 Automate 2026 전시장, 로봇 손가락이 책상에 딱 붙은 카드 한 장을 스윽 밀더니 그대로 집어 올렸습니다. 메추리알을 쥐고도 껍데기 하나 상하지 않았죠. 그런데 이 시연의 주인공은 값비싼 카메라도, 거대한 인공지능 모델도 아니었습니다. 사람 몸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부위, 손톱이었습니다. 손톱은 어떻게 카드 한 장을 들어 올리는가 ① 손톱이 없을 때 — 실패 책상 카드 손가락(옆모습) 밀기 ✕ 밑으로 걸리지 않음 살이 눌려 퍼지며 카드 위로 미끄러질 뿐, 밑을 파고들 단단한 모서리가 없습니다 ② 손톱이 있을 때 — 성공 책상 카드 손가락(옆모습) 밀기 6축 힘 감지 손톱 진입각 15~25° 1~2mm 들리면 성공 받침점: 책상에 닿은 손톱 끝 단단한 손톱 끝이 받침점이 되고, 카드 모서리가 손톱 등을 타고 올라옵니다 손톱 6축 + 지문 부위 30개×3축 = 한 손끝에 측정 채널 96개 손톱은 힘을 느끼는 지렛대 — 얇은 물체 파지의 열쇠입니다 자료: Metrology News, Advances in Humanoid Robot Sensing Highlighted at Automate 2026 (2026) · XELA Robotics 시연 본 그림은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모식도로, 각도와 형상은 과장되어 있습니다 Humanoid Now · humanoidnow.kr 카드 한 장은 왜 로봇에게 벽이었을까 사람은 책상 위 카드를 아무 생각 없이 집습니다. 그런데 그 동작을 천천히 뜯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살로만 카드를 누르면 카드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말랑한 지문 부위는 눌리는 순간 평평하게 퍼져 버려서, 두께 0.3밀리미터 남짓한 카드 밑으로 파고들 모서리 자체가 없기 때문이죠. 이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손톱 끝을 카드 가장자리에 걸어 살짝 들어 올린 뒤에야 살로 쥡니다. 로봇에게는 지금까지 이 '살짝'이 없었습니다. 기존 로봇 핸드는 얇은 물체 앞에서 진공 흡착판을 따로 달거나, 카드를 책상 끝까지 ...

휴머노이드 로봇, 어디까지 왔나 — 배치 현황과 부품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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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열린 북미 최대 자동화 전시회 오토메이트(Automate) 2026에는 휴머노이드와 사족보행 로봇이 50대 넘게 나왔습니다. 작년보다 훌쩍 늘어난 숫자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로봇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호응을 얻은 글의 제목은 이랬습니다. "휴머노이드는 어디에나 있었다. 회의론도 그만큼이었다." 전시장은 뜨겁고 현장의 시선은 차갑습니다. 저는 양쪽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일하는 로봇의 명단과 부품 회사들의 달력을 같이 펼쳐 보면 그렇습니다. 물류 현장에 투입된 휴머노이드 로봇 이미지 — Humanoid Now (AI 생성 이미지) 일하는 로봇의 명단은 생각보다 짧다 먼저 명단부터. 검증된 배치 기록을 가진 회사는 손에 꼽습니다. 피규어(Figure)는 BMW 스파턴버그 공장에서 11개월 파일럿을 마치고 차세대 기종을 물류 공정에 투입했으며, BMW는 올여름 라이프치히 공장으로 배치를 넓힙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디짓은 GXO, 섀플러, 도요타 캐나다 등 아홉 곳의 고객 시설에서 누적 6만 5천 시간을 일했습니다. 중국 유니트리는 작년 한 해에만 약 5,500대를 출하했고, 이번 오토메이트에서는 앱트로닉(Apptronik)이 신형 아폴로 2와 로봇 훈련 시설을 공개했습니다. 반면 가장 유명한 테슬라 옵티머스는 아직 외부에 한 대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글 에서 다뤘으니, 오늘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짧은 명단은 앞으로 어떻게 길어질까요. 회의론의 알맹이는 다리가 아니라 손이다 커뮤니티 회의론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연구를 인용한 지적이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지금 어려운 것은 두 발로 걷는 일이 아니다. 무엇이든 집을 수 있는 범용 그리퍼, 그리고 정해진 작업이 아닐 때도 주변을 이해하는 감지 능력이다. 이것이 안 되면 휴머노이드는 더 싸고 이미 검증된 협동로봇이나 자율이동로봇을 이길 수 없다. 뼈아픈 지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지적들을 부품 목록으로 바...

휴머노이드 로봇 양산, 아반떼보다 어려운 이유

옵티머스가 물구나무를 서고, 아틀라스가 공을 찹니다. 영상만 보면 로봇의 시대는 이미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숫자 하나를 확인하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2026년 7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휴머노이드인 테슬라 옵티머스의 외부 판매량은 0대입니다. 전용 생산 라인은 아직 돌지 않았습니다. 무대 위의 로봇과 공장 안의 로봇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요. 저는 그 답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기계, 아반떼의 부품표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아반떼 vs 옵티머스: 양산의 현실 아반떼 (준중형 세단) 부품 수 약 3만 개 (내연기관차 기준) 생산 규모 국내 판매만 연 7만 9천여 대 (2025) 공급망 100년 넘게 다져진 협력사 생태계 옵티머스 (휴머노이드) 부품 수 고유 부품 약 1만 종 (머스크 발언) 생산 규모 2025년 누적 수백 대 수준 공급망 표준도 협력사망도 아직 형성 중 부품 수는 3분의 1인데 생산량은 100분의 1 이하 문제는 부품 수가 아니라 부품 뒤에 있는 공급망과 공정의 성숙도입니다 자료: 한국자동차연구원 · 현대자동차 2025년 판매 실적 · Technology.org(2026.7.18) · Tesla 실적 발표(2026.4.22) 사진: Wikimedia Commons — 아반떼 Benespit (CC BY-SA 4.0) · 옵티머스 Benjamin Ceci (퍼블릭 도메인) Humanoid Now · humanoidnow.kr 5,000대라고 했다, 수백 대를 만들었다 5,000대. 테슬라가 2025년에 만들겠다고 발표한 옵티머스 숫자입니다. 실제로 만든 것은 수백 대 — 목표의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미국 매체 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은 전했습니다. 기술 매체 테크놀로지(Technology.org)의 7월 18일 분석은 한층 냉정합니다. 지금까지 옵티머스 생산 일정이 발표 전에 밀리거나 수정된 사례만 여덟 차례. 이쯤 되면 일정이 아니라 패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머스크가 직접 밝힌 이유입니다. 그는 ...

부품을 10분의 1로 — 아틀라스가 축구하는 동안, 진짜 뉴스는 '도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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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새 아틀라스 영상이 또 돌았습니다. 이번엔 공을 차더군요. 댓글은 늘 비슷합니다. "터미네이터 곧 나오겠네", "일자리 뺏기겠다". 그런데 저는 로봇이 공을 차는 장면보다, 그 로봇의 부품표(BOM) 가 훨씬 궁금했습니다. 7월 2일 포브스가 보스턴 다이내믹스 아틀라스 팀과 나눈 단독 인터뷰가 그 궁금증을 정확히 긁어줬습니다. 제목의 핵심 단어는 축구도, AI도 아니었습니다. "Order of magnitude simpler" — 한 자릿수만큼 더 단순해졌다는 것입니다. ▲ 보스턴 다이내믹스 공식 영상 — 전기식 아틀라스 포브스가 전한 것: "성능은 그대로, 그런데 훨씬 단순해졌다" 인터뷰에서 아틀라스 로봇 행동 담당 디렉터 알베르토 로드리게스(Alberto Rodriguez) 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부품이 훨씬, 훨씬 적어졌고, 고유 부품 종류 도 훨씬 줄었습니다." "제조 과정이 훨씬 빠르고 단순해졌고, 그게 곧 더 높은 신뢰성과 더 낮은 원가 로 이어집니다." "동일하거나 더 높은 성능을, 근본적으로 훨씬 단순한 로봇으로 구현해낸 게 기쁩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정확히 짚고 가겠습니다. 그는 "정확히 10분의 1"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표현은 "복잡도(complexity)를 거의(almost) 한 자릿수 줄였다" 입니다. 부품 개수가 1/10로 뚝 떨어졌다는 게 아니라, 부품 수와 '부품 종류'를 합친 전체 복잡도 를 거의 열 배 가까이 걷어냈다는 뜻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오히려 이 뉴스의 진짜 무게입니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제조 원가를 정하는 건 부품 '개수'보다 부품 '종류'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공중에 뜬 기술 자랑이 아닙...

로봇 센서, 못 봐서가 아니라 늦게 봐서 넘어집니다

로봇이 넘어지는 영상을 보면 못 봤나 싶습니다. 아닙니다. 봤습니다. 늦게 봤을 뿐이죠. 센서 목록을 카메라, 라이다, IMU 하는 식으로 종류별로 정리하는 대신 갱신 주기를 전부 밀리초로 바꿔 한 줄에 늘어놓아 봤더니, 로봇의 감각이 종류가 아니라 속도로 층이 갈린다는 게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기를 전부 밀리초로 바꿔 한 줄에 늘어놓았습니다 가장 안쪽부터 적어 보겠습니다. 모터 드라이버의 전류 루프는 초당 2만 번 돕니다. 0.05밀리초에 한 번이죠. 관절 엔코더와 위치 제어 루프는 대개 1킬로헤르츠, 1밀리초입니다. 자세를 재는 IMU도 1킬로헤르츠 이상이고, 원시 데이터는 4킬로헤르츠까지 나옵니다. 발바닥의 힘·토크 센서와 손끝의 촉각 센서도 비슷한 대역입니다. 여기까지가 한 덩어리입니다.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카메라는 초당 30프레임, 한 프레임에 33밀리초가 걸립니다. 라이다는 10에서 20헤르츠, 50에서 100밀리초죠. 0.05밀리초와 100밀리초. 같은 로봇 안에서 감각의 빠르기가 2천 배 차이 납니다. 여기에 덧붙일 정직한 각주가 하나 있습니다. 위 숫자는 센서가 값을 내놓는 주기일 뿐입니다. 그 값이 계산을 거쳐 관절 명령으로 바뀌기까지의 처리 시간과 통신 지연은 따로 붙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격차는 여기 적은 것보다 더 벌어집니다. 33밀리초 동안 로봇은 5센티미터를 갑니다 이 격차가 얼마나 큰지 걸음으로 환산해 봤습니다. 사람이 조금 빠르게 걷는 속도가 초속 1.5미터 남짓입니다. 카메라 한 프레임인 0.0333초를 곱하면 5센티미터. 로봇이 화면 한 장을 받아 보는 사이에 몸이 5센티미터를 이동한다는 뜻입니다. 이게 왜 문제인지는 발바닥 크기와 같이 놓아야 보입니다. 성인 발 길이가 25센티미터 정도이고, 서 있을 때 무게중심이 벗어나면 안 되는 지지 영역이 대략 그 안쪽입니다. 5센티미터는 그 영역의 5분의 1입니다. 게다가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 뒤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수십 밀리초 단위죠. 카메라 한 프레임을 기...

서보모터는 가만히 있을 때 가장 뜨겁습니다

로봇이 팔을 든 채 가만히 서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 순간이 모터에게는 가장 가혹합니다. 회전이 없으니 기계적 출력은 정확히 0와트인데, 전기는 조금도 줄지 않고 계속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들어간 전기가 전부 어디로 가는지 계산해 봤더니, 휴머노이드가 왜 데모 영상만큼 오래 일하지 못하는지가 한 줄로 정리됐습니다. 출력은 0와트인데 전력은 그대로 먹습니다 회전 기계가 내는 일은 토크에 각속도를 곱한 값입니다. 그래서 각속도가 0이면, 토크를 아무리 크게 내고 있어도 출력은 0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상태죠. 그렇다고 전기가 안 드는 것은 아닙니다. 모터의 토크는 전류에 비례하기 때문에, 팔을 든 자세를 유지하려면 그 토크에 해당하는 전류를 계속 흘려야 합니다. 그리고 전류가 흐르는 곳에는 저항이 있습니다. 권선 저항 0.1옴짜리 관절에 20암페어를 흘린다고 놓고 계산해 보면, 0.1 곱하기 20의 제곱, 40와트입니다. 이 40와트는 로봇을 움직이는 데 한 푼도 쓰이지 않습니다. 전부 열입니다. 관절 하나에서요. 옵티머스처럼 액추에이터가 28개인 로봇이라면, 자세를 잡고 서 있기만 해도 몸 안에서 수백 와트가 열로 바뀌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이 계산의 권선 저항은 제조사가 잘 공개하지 않는 값이라 200와트급 브러시리스 모터의 통상 범위에서 가정했습니다. 숫자 자체보다는 관계를 봐야 합니다. 토크를 두 배 내면 열은 네 배가 됩니다 그 관계가 제곱이라는 게 핵심입니다. 손실은 전류의 제곱에 비례합니다. 토크를 두 배로 올리려면 전류를 두 배로 올려야 하고, 그러면 열은 네 배가 됩니다. 세 배면 아홉 배죠. 모터 카탈로그에 연속 정격 토크와 순간 최대 토크가 따로 적혀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최대 토크는 열이 쌓여 권선이 타기 전까지, 길어야 몇 초 동안 쓸 수 있는 숫자입니다. 휴머노이드 사양표에 적힌 관절 토크가 대체로 이 피크 값이라는 점은 짚어 둘 만합니다. 400뉴턴미터라고 적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