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사기 전에 화면 속에서 먼저 써봤습니다 (1편) — 왜 시뮬레이션부터 시작했나

회사 창고 선반에 장비 두 대가 놓여 있습니다. 3D 프린터 한 대, 3D 스캐너 한 대. 둘 다 제가 스펙표만 보고 결제한 것들. 지금은 아무도 켜지 않습니다. 이번에 로봇을 사려다 손이 멈춘 이유는 성능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선반이 먼저 떠올라서였습니다. 스펙표는 다 맞았고, 틀린 쪽은 제 해석이었습니다 발단은 회사 제품이었죠. 우리 제품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시제품까지 뽑아 보려고 3D 프린터 Ender 3와 3D 스캐너 Creality Ferret을 들였습니다. 프린터로 부품을 뽑고 스캐너로 형상을 따오는, 머릿속에서는 꽤 그럴듯한 그림이었죠. 결과는 상용화 실패였습니다. 출력물은 제품으로 쓰기에 정밀도와 강성이 부족했고, 스캐너는 실무에 바로 넣을 만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뽑아 주지 못했습니다. 두 대 모두 재고가 됐죠. 실패한 뒤에 스펙표를 다시 펼쳐 봤습니다. Ender 3의 공개 사양에 적힌 적층 두께는 0.1mm, 노즐 지름은 0.4mm입니다. 제가 15년을 보낸 금형 쪽에서 도면에 적히는 공차는 그보다 한 자리 아래입니다. 숫자는 처음부터 스펙표에 다 있었습니다. 그 숫자가 제 일에서 무슨 뜻인지를 몰랐을 뿐입니다. 그때 문장 하나를 배웠습니다. 하드웨어는 써보기 전에는 진짜 성능을 모릅니다. 그런데 써보고 나면 이미 결제가 끝나 있죠. 그런데 사보지 않고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이 경험이 로봇 앞에서 발목을 잡았습니다. 로봇은 3D 프린터보다 훨씬 비싸고, 종류는 비교도 안 되게 많습니다. 팔 하나짜리 협동로봇부터 사족보행, 사람 형태의 휴머노이드까지 몇 년 전과는 다른 속도로 쏟아집니다. 여기서 또 잘못 고르면 선반에 놓일 물건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금전적 리스크를 줄이는 일입니다. 어떤 로봇이 제 작업에 맞는지 결제 전에 판단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안목입니다. 로봇팔과 이동로봇과 휴머노이드가 각각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어떤 로봇을 어디에 붙일지 고르는 감...

휴머노이드 로봇 100m 8.64초, 멈추는 법은 없었습니다

결승선을 통과한 로봇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트랙 끝에 세워 둔 두꺼운 매트에 그대로 부딪혔고, 쓰러진 몸통에서 작은 불길이 올라왔습니다. 8월 26일 베이징, 100m를 8.64초에 끊고 우승한 톈궁 울트라(Tiangong Ultra)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대회가 증명한 것은 로봇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로봇이 아직 스스로 멈추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볼트를 0.94초 앞선 기록, 그 뒤에는 매트가 있었습니다 제2회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게임은 8월 22일부터 26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렸습니다. 666개 팀이 2,056대의 로봇을 데리고 나와 51개 종목에서 1,301경기를 치렀습니다. 마지막 날 마지막 경기가 대형급 100m 결승이었죠. 베이징 휴머노이드로봇 혁신센터(X-휴머노이드)가 만든 톈궁 울트라는 예선 9.39초, 준결승 8.86초를 거쳐 결승에서 8.64초를 찍었습니다. 볼트가 2009년에 세운 9.58초보다 0.94초 빠릅니다. 기사 제목은 대부분 여기서 끝납니다. 그런데 로이터가 전한 준결승 현장 묘사에는 한 문장이 더 붙어 있었습니다. 로봇들을 세우기 위해 결승선 너머에 두꺼운 매트를 깔아 두었고, 톈궁은 그 매트에 충돌한 뒤 쓰러졌으며 몸통에서 작은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간 다른 준결승에서는 경주 도중 로봇 한 대가 분해됐습니다. 로이터도 로봇 기록과 인간 기록은 직접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습니다. 가속은 배웠는데 감속은 아직입니다. 기록표를 초속으로 바꿔 봤습니다. 곡선이 평평했습니다 저는 대회가 발표한 세 종목 기록을 평균 속도로 환산해 봤습니다. 100m 8.64초는 초속 11.57m, 시속 41.7km입니다. 400m 38.15초는 초속 10.49m, 1500m 2분 21.64초는 초속 10.59m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인간 세계기록을 계산하면 100m 초속 10.44m, 400m 9.30m, 1500m 7.28m가 나옵니다. 숫자보다 모양이 이상했습니다. 인간의...

휴머노이드 원격조작, 그 영상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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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0일 테슬라의 '위, 로봇' 행사장에서 옵티머스가 관객에게 술을 따르고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한 참석자가 물었습니다. 너는 진짜 인공지능이냐고. 로봇이 답했습니다. "오늘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 자율은 아닙니다." 그날 그 사실을 밝힌 것은 무대 위의 자막도, 발표자도 아니었습니다. 로봇 자신이었습니다. 로봇이 스스로 실토한 문장 포춘은 2024년 10월 13일 크리스티안 헤츠너 기자의 기사에서 그 장면을 전했습니다. 행사장의 옵티머스들은 특수한 슈트를 입은 사람이 동작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원격 조작되고 있었고, 목소리 역시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블룸버그가 관계자를 인용해 먼저 보도한 내용입니다. 기사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머스크는 그날 로봇이 학습된 인공지능 외의 다른 힘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다만 오해는 없어야 합니다. 원격 조작 자체는 부정행위가 아닙니다. 지금의 로봇 산업에서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것은 표준에 가까운 절차이고, 그렇게 모은 동작이 다음 세대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가 됩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 사실이 어디에 적혀 있느냐입니다. 덧붙이자면 그날의 그 대화를 담은 공식 영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참석자들이 휴대전화로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 화면뿐입니다. 세 회사의 공식 페이지를 직접 열어 고지 문구를 찾아봤습니다 그래서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기사 요약이 아니라 회사가 스스로 쓴 문장을 보려고 1X의 NEO 제품 페이지, 피규어 최고경영자의 게시글, 테슬라 행사 관련 자료를 차례로 열어 '원격'과 '자율'이라는 단어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대조했습니다. 결과는 세 갈래로 갈렸습니다. 1X는 제품 설명에 분명히 적었습니다. "NEO가 모르는 복잡한 작업에 대해서는 1X의 전문가가 정해진 시간에 원격으로 그 동작을 감독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

로봇 부품 국산화율 40%대, 벽은 손끝 0.17mm에 있습니다

신규 라인을 셋업할 때 저는 부품표를 위에서부터 훑으며 조달처를 옆 칸에 적어 봅니다. 브래킷과 하우징 가공, 케이블 하니스, 프레임 구조재. 여기까지는 국내 업체 이름으로 칸이 채워집니다. 그런데 커서가 구동계 줄에 닿으면 손이 멈추더군요. 정밀 감속기, 고정도 엔코더, 고응답 서보 드라이브. 이 세 줄에서는 습관처럼 독일과 일본 메이커의 카탈로그를 먼저 펼칩니다. 국내에서 휴머노이드 시제기가 쏟아지는 2026년에도, 정작 그 안에서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부품의 조달처는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40%대라는 숫자는 어디가 비어 있다는 뜻일까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026년 1월 25일 발표한 보고서 '글로벌 로보틱스 산업 지형 변화와 한·일 공급망 비교 및 시사점'은 이 어긋남을 숫자로 보여 줍니다. 한국의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기준 세계 1위, 산업용 로봇 설치 대수는 세계 4위입니다. 그런데 로봇 소재·부품의 국산화율은 40%대에 그칩니다. 총출하액의 71.2%가 내수에 묶여 있고, 감속기와 모터 같은 핵심 부품은 하모닉드라이브·야스카와전기 등 일본 기업이 글로벌 시장의 60~70%를 쥐고 있습니다. 모터에 들어가는 영구자석의 중국 의존도는 88.8%입니다. 보고서는 이 구조를 "다운스트림 경쟁력에 비해 업스트림과 미드스트림 취약성이 누적된 구조"라고 표현했습니다. 로봇을 많이 쓰고 많이 만들수록 부품 수입도 같이 늘어난다는 뜻이죠. 다만 40%대라는 수치를 읽을 때 하나는 짚어 두어야 합니다. 이 숫자는 평균일 뿐, 국산이 '어느 등급까지' 닿는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벽으로 느껴지는 것은 비중이 아니라 등급입니다. 30arcsec이 손끝에서 얼마가 되는지 계산해 봤습니다 감속기 카탈로그를 열면 각전달오차가 수십 arcsec 단위로 적혀 있습니다. arcsec은 1도의 3,600분의 1이라 감이 잘 오지 않죠. 그래서 직접 계산해 봤습니다. 1arcsec은 라디안으로...

휴머노이드 배터리, 얼음을 지고 달린 이유

2025년 4월 19일 베이징 이좡 하프마라톤. 인간 12,000명 사이에 휴머노이드 21대가 섞여 달렸습니다. 그 로봇들 등에는 얼음이 실려 있었고, 정비 요원들이 옆에서 냉각 스프레이를 뿌리며 따라 뛰었습니다. 우승 기록은 2시간 40분 42초.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같은 코스에서 50분 26초가 나왔습니다. 두 시간이 줄어드는 동안 바뀐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었습니다. 2025년에는 얼음을 지고 달렸습니다 우승은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가 만든 톈궁 울트라였습니다. 키 약 180센티미터, 무게 약 55킬로그램. 21.0975킬로미터를 2시간 40분 42초에 완주했습니다. 그 사이 배터리는 세 번 갈았고요. 사람이 하프마라톤 도중에 심장을 세 번 바꿀 수는 없으니, 이 대회에서 배터리 교체는 반칙이 아니라 규칙이었죠. 나머지 로봇들의 사정은 더 나빴습니다. 다수가 과열로 주저앉거나 넘어졌고, 유니트리는 완주를 위해 아예 얼음 배낭을 지웠습니다. 기록만 보면 기술 시연입니다. 그런데 현장 사진을 보면 다른 이야기가 읽히더군요. 로봇의 몸이 스스로 열을 버리지 못해서, 사람이 옆에서 계속 식혀 주고 있었습니다. 사족을 붙이면 이 대회는 인간과 로봇이 같은 코스를 달린 첫 사례였고, 결과는 인간의 완승이었죠. 인간 우승자는 1시간 남짓에 끝냈고요. 토르소 단면을 그려 보니 열이 나갈 길이 없었습니다 왜 얼음까지 필요했는지 납득이 안 돼서, 휴머노이드 상체 단면을 종이에 그려 봤습니다. 가로 35, 세로 45, 깊이 20센티미터쯤 되는 상자. 그 안에 배터리팩을 눕히고, 제어 기판을 세우고, 어깨와 허리 액추에이터를 배치했습니다. 그려 놓고 나서야 문제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열이 나갈 길이 없습니다. 방진과 방수를 하려면 외피를 닫아야 하고, 닫으면 공기가 흐르지 않죠. 팬을 달 만한 자리는 이미 부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발열원인 배터리팩은 하필 가장 안쪽. 그래서 계산을 해 봤습니다. 밀폐된 상자가 자연대류와 복사만으로 열을 버릴 때, 표면적...

한 번 학습, 모든 로봇에 배포 — 멀티엠보디먼트 VLA

로봇 자동화를 한 번이라도 검토해 본 분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벽이 있습니다. A사 로봇을 들이면 A사 방식으로 프로그래밍하고, A사 교육을 받고, A사 부품과 유지보수에 묶입니다. 작업 노하우가 그 기종 안에 갇히는 것이죠. 그런데 2025년 말 구글 딥마인드가 공개한 기술은 이 구조 자체를 흔듭니다. 한 로봇에서 가르친 동작을 재학습 없이 다른 기종에 그대로 옮기는 '모션 트랜스퍼(motion transfer)'입니다. 오늘은 이 멀티엠보디먼트 VLA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게 왜 공장의 '벤더 종속성'을 흔드는 신호인지 현장 관점에서 짚어 보겠습니다. 멀티엠보디먼트 VLA와 '모션 트랜스퍼'란 VLA(Vision-Language-Action)는 로봇이 눈으로 보고(vision), 말을 이해해(language), 실제 동작(action)으로 옮기는 모델입니다. 여기에 '멀티엠보디먼트(multi-embodiment)'가 붙으면, 하나의 모델이 서로 다른 몸체를 가진 여러 기종의 로봇을 함께 제어 한다는 뜻입니다. 핵심 기술은 모션 트랜스퍼 입니다. 딥마인드는 양팔 로봇 ALOHA, 양팔 로봇 프랑카(Franka), 앱트로닉의 휴머노이드 아폴로(Apollo) 등 구조가 제각각인 로봇들의 데이터를 하나의 '통합 모션 표현'으로 함께 학습 시켰습니다. 그 결과, 한 기종에서만 보여준 작업이 다른 기종에서도 기종별 재학습 없이(zero-shot) 그대로 작동 합니다. ALOHA에게만 가르친 동작이 아폴로와 프랑카에서도 되고, 그 반대도 됩니다. 이 개념은 제미나이 로보틱스 1.5(2025년 9월) 연구에서 정식으로 제시됐고, 2세대로 오면서 "새로운 양팔 로봇이라면 몇 시간이면 이 지능을 이식할 수 있다"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제미나이 로보틱스 2가 바꾼 전체 그림은 앞선 글에서 정리 했으니, 오늘은 그중 '기종 이식' 하나만 깊이 파 보겠습니다. 한...

로봇 손의 모터는 왜 팔뚝으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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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을 눌러 보면 살과 얇은 근육뿐입니다. 그런데 주먹을 힘껏 쥐면 딱딱하게 부풀어 오르는 곳은 손이 아니라 팔뚝이죠. 지난 7월 노르웨이의 1X 테크놀로지스가 공개한 가정용 로봇 NEO의 최종형 손도 정확히 같은 구조였습니다. 관절은 25개인데, 그 관절을 돌리는 모터는 손 안에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팔뚝에 들어가 있고 손목을 지나는 힘줄이 손가락을 당깁니다. 로봇 손 설계의 질문이 '손에 무엇을 더 넣을까'에서 '손에서 무엇을 빼낼까'로 뒤집힌 것입니다. 관절이 25개인데 손 안에 모터가 없다는 말 1X가 밝힌 NEO 손의 자유도는 25입니다. 손가락과 손바닥에 완전 구동 관절 22개, 손목에 3개. 25개 관절 전부가 힘 제어 방식이고 역구동이 가능합니다. 겉면에는 촉각 피부가 덮여 누르는 힘과 접촉 위치, 옆으로 미끄러지는 전단력까지 읽습니다. 방수 등급은 IP68이고 소재는 식품 접촉이 가능한 폴리머입니다. 로봇이 설거지를 하고 자기 손을 물로 씻어도 된다는 뜻이죠. 창업자이자 대표인 베른트 뵈르니치는 "우리 목표는 서류상으로만 그럴듯해 보이는 손이 결코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1X는 모터부터 최종 조립까지 전부 자체 생산하는 전용 라인을 세우고, 2026년 한 해 손 1만 개를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1만 개는 확보한 생산 능력에 대한 목표치이지 이미 나온 실적이 아니라는 점은 짚어 두겠습니다. 스펙표에서 정작 눈길이 오래 머문 항목은 자유도 25가 아니었습니다. 모터의 위치. 그것 하나였습니다. ▲ NEO 손의 실제 움직임을 담은 시연 영상 <NEO's Hands>. 출처: 1X 테크놀로지스 공식 유튜브 채널(@1X-tech) 사람의 손가락 근육은 왜 손에 없을까 해부학 교과서를 펼치면 답이 먼저 나와 있습니다. 손가락을 굽히는 힘의 대부분은 팔뚝의 얕은손가락굽힘근과 깊은손가락굽힘근이 만듭니다. 그 근육들이 만든 힘은 아홉 가닥의 힘줄을 타고 손목의 ...

통합 액추에이터, 로봇 관절을 통째로 파는 시대

독일 코블렌츠의 스타빌러스(Stabilus)는 자동차 트렁크 문을 받쳐 주는 가스 스프링으로 세계 시장을 잡은 회사입니다. 그 회사가 7월 29일 오전 7시, 휴머노이드 로봇의 관절을 만들겠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에서 정작 중요한 대목은 '액추에이터가 하나 더 나온다'가 아니었습니다. 관절을 부품으로 팔지 않고 완제품 한 덩어리로 팔겠다는 것, 다시 말해 이 산업의 판매 단위가 바뀐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가스 스프링 회사는 왜 로봇 관절로 방향을 틀었을까 파트너는 독일의 시냅티콘(Synapticon)입니다. 산업용 서보 드라이브와 로봇 기능 안전을 다뤄 온 회사죠. 두 회사가 처음 만난 사이는 아닙니다. 스타빌러스는 2021년부터 시냅티콘의 소수 지분을 보유해 왔고, 이번에 관계를 공동 제품 라인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역할은 깔끔하게 갈립니다. 스타빌러스가 기계 설계와 부품 소싱, 양산화, 조립, 물류를 맡고, 시냅티콘이 소프트웨어와 구동 기술, 전자 회로, 센서, 그리고 인증된 기능 안전을 책임집니다. 목표 제품은 머리와 손목처럼 작은 관절부터 고관절과 무릎처럼 큰 힘이 걸리는 관절까지 여러 크기 등급을 아우르는 통합 액추에이터입니다. 생산 계획도 구체적입니다. 2027년 유럽의 스타빌러스 공장에서 소량 생산을 시작하고, 2028년 북미에서 대량 생산으로 넘어갑니다. 완성된 제품은 두 회사가 각자의 브랜드로 판매합니다. 스타빌러스의 최고기술책임자 데이비드 사베트는 발표문에서 휴머노이드 로보틱스를 "다가올 10년의 가장 흥미로운 성장 시장 중 하나"라고 표현했습니다. 부품 다섯 개를 따로 조립하면 무엇이 어긋날까 보도자료에는 공차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굳이 한 덩어리로 묶어 파는지가 궁금해서, 종이에 관절 하나를 놓고 정렬 오차를 직접 계산해 봤습니다. 모터의 회전자 축, 감속기의 입력축, 출력 플랜지, 엔코더 디스크는 모두 같은 축선 위에 놓여야 합니다. 부품을 따로 사...

휴머노이드 안전 기준, 넘어지는 로봇을 위한 규격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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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설비를 수리하기 전에 하는 일은 40년 넘게 같았습니다. 전원을 차단하고, 스위치에 자물쇠를 걸고, 꼬리표를 붙입니다. '멈춘 기계는 안전하다'는 이 원칙 위에 산업 안전 규정 전체가 서 있죠. 그런데 두 발로 선 휴머노이드는 전원을 끊는 순간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수십 kg의 금속 덩어리째 쓰러집니다. 기계를 멈추는 행위가 오히려 위험을 만드는 최초의 기계 앞에서, 지금 국제 안전 표준의 문법이 다시 쓰이고 있습니다. 40년 된 안전 규격이 상정하지 못한 로봇 산업용 로봇의 안전은 ISO 10218이라는 국제 규격이 지켜 왔습니다. 지난해 나온 2025년 개정판은 20여 개국 전문가가 8년을 들인 결과물로, 2부의 안전 요구사항 분량이 28쪽에서 50쪽으로 늘었을 만큼 촘촘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두꺼운 규격에도 깔려 있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로봇은 바닥에 고정돼 있거나, 적어도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는 넘어지지 않는다는 가정입니다. 이족보행 휴머노이드는 다릅니다. 균형 제어 소프트웨어가 쉬지 않고 모터를 미세 조정해야만 서 있을 수 있고, 그 제어가 멈추면 즉시 쓰러집니다. 국제표준화기구(ISO)는 이런 기계를 '능동 제어형 안정성(actively controlled stability)' 로봇으로 따로 정의하고, 기술위원회 TC 299에서 전용 안전 표준인 ISO 25785-1을 새로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위원회 초안(CD) 단계이며, 발행은 2026~2027년으로 전망됩니다. 배치도에 펜스 선을 그으려다 멈춘 이유 저는 작업장 평면 배치도에 안전 펜스와 접근 금지 구역을 표기하는 작업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휴머노이드가 들어간 작업장을 같은 방식으로 직접 그려 봤습니다. 고정식 로봇 셀은 간단합니다. 로봇 팔의 최대 도달 반경을 컴퍼스로 돌리고 여유 거리를 더해 선을 하나 그으면, 그 선이 곧 펜스 위치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로봇 차례가 되자 연필이 멈추더군요. 로봇이 이동하면...

딥시크의 종착역은 챗봇이 아니라 로봇이었다

2026년 5월 20일,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이 투자자들 앞에 앉았습니다. 500억 위안, 우리 돈 약 10조 원을 모으는 4시간짜리 비공개 설명회였죠. 그 자리에서 그는 뜻밖의 말을 합니다. 월드 모델도, 임바디드 인텔리전스(신체를 가진 AI)도 지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온 세계가 휴머노이드에 열광하는 시기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AI 창업자가 로봇을 뒤로 미룬 겁니다. 그런데 유출된 녹취록을 끝까지 읽어 보면 이야기가 뒤집힙니다. 그가 그린 로드맵의 마지막 칸에는 로봇이 있었습니다. 118개의 답변에서 로봇이 나오는 자리를 세어봤습니다 이 설명회 녹취록은 중국 인터넷에 '118개 문답' 형태로 유출되어 돌았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주요 매체가 그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전문을 읽으며 로봇 관련 발언이 몇 번 나오는지 직접 세어봤는데, 실질적인 대목은 딱 두 곳뿐이더군요. 대신 그 두 곳이 로드맵의 구조를 보여 줍니다. 량원펑이 말한 계단은 이렇습니다. 작년의 계단은 CoT, 즉 생각의 사슬로 추론 능력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올해의 계단은 에이전트, 그중에서도 코딩 에이전트입니다. 다음 계단이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못 박은 지속 학습, 곧 모델이 배포된 뒤에도 계속 배우는 능력입니다. 그다음은 AI가 다음 버전의 AI를 스스로 개선하는 자기 반복. 그리고 맨 마지막 계단에 임바디먼트, 로봇이 놓여 있습니다. 로봇을 미룬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순서를 정해 둔 것이었습니다. 딥시크의 다섯 계단 — 량원펑이 말한 AGI 로드맵 2026년 5월 투자 설명회 발언 순서대로 재구성 (비공식 유출 녹취록 기준) ① CoT 추론 "작년의 계단" 생각의 사슬 · R1 ② 에이전트 "올해의 계단" 코딩 에이전트 우선 ③ 지속 학습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 배포 후에도 계속 배우기 지금 여기 ▼ ④ 자기 개선 AI가 다음 버전의 AI를 만든다 ⑤ 임바디먼트 종착점 — 물리 ...

제미나이 로보틱스 2, '하나의 두뇌'로 모든 로봇을

지난달 말, 구글 딥마인드가 '제미나이 로보틱스 2'를 공개했습니다. 시연 영상에서 앱트로닉의 휴머노이드 아폴로 2는 "물뿌리개를 아래 선반 초록색 통에 넣어"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물뿌리개를 집어 정확한 통에 넣었습니다.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이건 지금까지의 로봇과는 작동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오늘은 제미나이 로보틱스 2가 기존 로봇 생태계와 무엇이 근본적으로 다른지, 개선된 지점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로봇은 '한 우물만 파는' 기계였습니다 기존 산업용 로봇의 세계는 철저히 '한 작업, 한 로봇'이었습니다. 용접이면 용접, 조립이면 조립. 작업마다 엔지니어가 동작을 일일이 프로그래밍하거나, 사람이 직접 팔을 잡고 경로를 가르치는 티칭 작업을 거칩니다. 한번 세팅하면 같은 동작을 정확히 반복하는 데는 강하지만, 배우지 않은 상황이 오면 그대로 멈춰 섭니다. 제조 현장에서 라인 로봇을 다뤄 본 입장에서 이 한계는 몸으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제품이 조금만 바뀌어 로봇의 집는 위치 하나를 옮기려 해도, 엔지니어를 불러 티칭을 다시 잡아야 했습니다. 로봇을 다른 라인으로 옮기면 처음부터 새로 가르치는 건 당연했고요. 로봇은 똑똑한 게 아니라, 정해진 것만 지치지 않고 반복하는 기계에 가까웠습니다. 기존 로봇 vs 제미나이 로보틱스 2 기준 기존 로봇 제미나이 로보틱스 2 개발 방식 작업마다 개별 프로그래밍 자연어 명령 한마디 새 작업 학습한 것만 수행 안 배운 작업도 즉석 대응 로봇 간 이전 몸체 바뀌면 재학습 몇 시간이면 다른 로봇에 이식 행동 전 정해진 순서 실행 자연어로 '생각' 후 행동 신체 제어 주로 팔 단위 발끝~손끝 전신 제어 협업 단독 작동 로봇끼리 분업 협업 지식 내장된 것만 웹 검색 등 도구 호출 구동 클라우드 의존 온디바이스(로컬) 가능 자료: Go...

마그네슘 합금, 휴머노이드 몸통을 통째로 찍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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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6에서 엔진AI의 휴머노이드 T800이 앞차기 시범을 보이던 순간, 관람객들은 다리를 봤지만 주조 업계는 몸통을 봤습니다. 이 로봇의 몸체는 항공우주급 마그네슘-알루미늄 합금을 자동차 공장에서 쓰는 일체형 다이캐스팅으로 한 번에 찍어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 조립하는 몸통이 아니라 붕어빵처럼 통째로 찍어내는 몸통. 테슬라가 차체 제조에 도입해 화제가 됐던 기가캐스팅의 문법이, 이제 사람 크기의 로봇으로 건너오고 있습니다. ▲ EngineAI 공식 채널의 T800 생산라인 영상 (출처: EngineAI) 구조용 금속 가운데 가장 가벼운 금속의 이력서 마그네슘 합금의 밀도는 약 1.8g/cm³입니다. 알루미늄 합금(2.7g/cm³)의 3분의 2, 강철(7.85g/cm³)의 4분의 1 수준으로, 실용 구조용 금속 가운데 가장 가볍습니다. 노트북 바디와 카메라 몸체에 오래 쓰여 온 이유죠. 로봇에게 반가운 성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진동을 스스로 흡수해 없애는 감쇠 능력이 구조용 금속 중 최상위권이라는 점입니다. 관절마다 모터가 박혀 온몸이 진동원인 휴머노이드에서, 떨림을 먹어 주는 골격 소재는 센서 정밀도와 직결됩니다. 전자파 차폐 성능도 좋아 제어 보드를 감싸는 하우징감으로도 어울립니다. 다만 만능은 아닙니다. 열을 퍼뜨리는 능력은 일반적으로 알루미늄 합금이 앞서기 때문에, 발열이 집중되는 모터 주변은 알루미늄이, 가벼움과 진동 흡수가 급한 몸통과 외장은 마그네슘이 맡는 분업이 현실적인 답으로 통합니다. '무게 10% 절감, 전력 15% 절약' — 이 수치를 검산해 봤습니다 올해 주조 업계 소식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테슬라에 기가프레스를 공급해 온 LK그룹이 선전의 로봇 기업 사이보그로보틱스 등과 손잡고 마그네슘 합금 휴머노이드 부품 개발에 나섰다는 소식입니다. 중국 매체들은 알루미늄을 마그네슘으로 바꾸면 로봇 전체 무게가 10% 줄고 소비 전력을 15% 이상 아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10%가 가능한 숫자인지...